지난 8월말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 개편방안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살펴보고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984년 정부투자기관 평가제도로부터 시작된 경평 제도는 올해로 38년째를 맞았다. 긴 세월을 거치며 그간 여러 차례의 개편이 있었지만, 행정학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하여 ‘경영평가단’을 구성하고, 단장도 명망 있는 민간 전문가가 맡는 것이 제도적으로, 또 관례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경영평가단은 한동안 민간 사단법인의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매년 경영평가 용역을 경영평가단 법인에 위탁하는 방식이었다. 경영평가단장은 이 법인의 장으로서 경영평가 ‘용역’을 수행하며 평가단 관리와 평가 운영, 그리고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단장을 포함한 평가위원 전원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촉하므로, 위촉 기간 동안 평가위원은 ‘공적 업무 수행 사인’으로서 정부의 업무를 대행하고 평가의 권한을 갖는다.
이런 구도는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정부가 경영평가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민간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 결과를 수용해 경평 성과급과 기관장 해임제의 등에 활용한다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는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정부 지분보유 또는 출연에 의해 설립된 기관들이지만 상법상의 기업 또는 별도의 근거법을 가진 특수법인 등으로 정부조직의 일부가 아닌 반민반관의 기관들이라는 성격에도 일부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 팔 거리 두기’식의 접근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 최근 들어 몇 가지 위기 징후가 관측되었다. 첫째, 과거의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공공부문 성과관리, 더 크게는 신공공관리론(NPM)에 입각하여 공공부문의 X-비효율성 해소와 성과 창출, 그리고 성과관리체계 확립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던 데 비해, 최근의 경평은 정부 정책 기조를 공공기관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점검수단으로 변모하였다. 말하자면 공공기관을 정책수단이자 Hood가 말한 통치자원으로서 공식조직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대표되는 일자리 창출, 국민 안전, 사회적 가치, 혁신 조달 등의 정부 정책 기조 및 국정과제들이 경영평가 지표로 속속 도입되었다. 경영평가가 공공기관의 정부 정책 이행도 점검으로 기능하면서 평가 행위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확대를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 독립적인 민간 경영평가단보다는 정부가 직할할 수 있는 체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단법인체인 경영평가단 및 사무국은 이미 폐지되었고, 현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가 경영평가 사무국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둘째, 경영평가위원과 기관과의 유착이라는 부작용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경영평가위원을 자주 교체하고, 상피제를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평가단 구성에서 기계적 다양성을 추구하다보니 평가자의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평가자의 전문성은 공공기관의 업역과 직결된 지식 차원의 전문성도 있지만, 정부업무평가와 성과관리론에 대한 이해, 나아가 평가 기법, 실무 및 기관과의 소통 등의 암묵지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평가단 구성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정부와 평가단 사이의 신뢰가 저하되어 발생한 현상이다. 과거 극소수 평가위원들의 부적절한 행태가 신뢰 저하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평가단의 전문성 저하 문제는 평가의 신뢰도와 피평가기관의 수용성을 악화시켰으며, 결국 매년 평가단에 위탁하는 형태의 경평제도를 좀 더 영속적이고 누적적인 조직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도록 만들었다.
셋째, 과년도 경평에 대한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가 수 개월간 이어졌는데, 이는 가뜩이나 전문성과 신뢰의 이중 부족(double deficit)의 위기에 놓인 평가단의 위축과 경직을 의미한다. 비계량 평가는 완벽히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관들을 함께 평가하다보면 상대평가의 요소가 상당히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평가위원과 평가팀이 기관들을 나누어 평가하다보면 이들 사이의 표준화(normalization)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사전 서면평가, 현장 실사, 사후 평정 등 평가단계별로 평가등급에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변동들을 모두 역추적하여 합리적인 이유와 문서화된 근거를 찾는다면 아마 많은 구멍들을 발견할 것이다. 평가 과정이 경직되면 총괄반의 종합 조정도 어렵고, 평가팀의 오류를 발견해 교정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상기한 징후들을 생각해 보면, 2021년에 실시된 2020년도 경평에서 결과 발표 이후 평가등급 변동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야기한 득점 집계 오류는 일종의 ‘예견된 사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경평제도 개편안은 민간 경영평가단 시대를 마무리하고 정부산하 상설 평가기관에 의한 경평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평가단 내부 상호검증 등 평가역량 강화 대신, 평가정보와 평가인력 관리 인프라를 구축하고, 평가검증단, 부처가 참여하는 검증위원회 등 평가단 상위의 검증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관리감독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향후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다소 복잡한 체계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가 수행 체계는 기재부-공공기관연구센터-평가단-평가단협의회-평가검증단 등으로 복잡해지고, 평가지표 체계에는 국민체감형 평가지표가 강화되고 기관 맞춤형 평가세부지표가 도입된다. 여러 가지 변화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평가자와 피평가기관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관련된 다양한 행위자들이 경평 제도 개편안의 맥락과 지향에 대한 공감대와 공통 이해를 형성토록 하는 노력도 경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