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과 혁신

박상욱(서울대)

상법상 엄연한 영리법인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시장에서 다른 민간 경제주체들과 직접 경쟁하고 있더라도, 그 지배적 소유주 또는 설립주체가 정부인 경우 우리는 그 회사 혹은 기관을 공공기관 또는 준정부기관으로 본다. 사실상 넓은 의미에서 정부의 일부 또는 외곽조직으로 보는 것이다. 준정부기관과 정부를 포괄하는 것이 공공부문(public sector)이다. 정부의 부처·청의 구성원은 직업공무원이다. 준정부기관은 임직원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는 점에서 정부조직과 뚜렷이 구분되지만,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전문화하여 대신 집행하거나(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공공의 성격이 매우 강한 재화 및 서비스를 독점적·준독점적으로 공급하거나, 국가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예를 들어 전력망, 항만, 공항, 기간도로 등을 유지·운영하거나, 또는 시장 기능을 보완하고 민간 주체를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성 사업을 수행한다. 준정부기관 중에는 과거에 정부조직의 일부였던 기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철도공사는 철도청을 ‘민영화’-철도공사는 여전히 국가 소유이므로 ‘민간화’가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한국통신(KT)이나 KT&G의 사례와 구별된다-한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 공기업을 포함한 준정부기관의 일반적인 특성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이 없다. 둘째, 원가 개념이 희박하다. 셋째, 수익구조가 정책적으로 결정된다. 넷째, 임직원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가 미흡하다. 다섯째, 관료제적 조직문화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특성들 모두가 지시(indicate)하는 바는 분명하다. 혁신(innovation)의 동인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혁신이란 새로운 생각을 경제적 가치로 구현하는 것이다. 쉽게 바꾸어 말하자면, 새로운 제품, 공정, 또는 서비스를 상용화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공공부문은 혁신을 창출하기에 불리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은 자본주의 체제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다. 경쟁자보다 우월한 제품/서비스, 낮은 원가, 높은 효율, 빠른 공급, 높은 고객만족도가 혁신의 목표가 된다. 경쟁 없이는 혁신이 있을 수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유인은 적절한 보상이다. 과거에는 독립 발명자가 혁신가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 혁신은 소수의 혁신적인 창업자를 제외하면 조직의 일원에 의해 조직적으로 생산된다. 따라서 혁신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은 구성원의 혁신 창출을 독려하기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 체계를 갖추고자 노력한다.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제나 사업부별·개인별 성과평가에 의거한 성과급제, 그리고 특례적인 고속승진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이러한 제도는 실효성이 없거나 유명무실하다. 원가 개념이 없으니 마진(margin) 개념도 없다. 대부분의 공공재(public goods) 또는 준공공재의 가격은 정책적으로 결정되거나 소비자의 지불의사에 의해 결정된다. 도저히 공공재라고 볼 수 없는 전기에너지의 소매가격이 정부에 의해 사실상 통제되는 것은 극단적 사례이다. 수돗물의 가격인 수도요금은 대중이 ‘깨끗한 물’의 가치를 얼마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공공기관의 수익은 대개 정부에 의해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으로 ‘조정’된다. 혁신을 통해 수익을 높이려는 유인이 작동하지 않는다. 조직 전체가 그러할진대, 구성원이 혁신을 창출할 유인은 더더욱 없다. 공공기관 임직원의 성과급은 기관의 매출이나 수익이 아닌, 해마다 봄철에 공공부문을 들쑤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경영평가의 공식 주체는 정부(기획재정부)이다. ‘혁신’은 경영평가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아마도 미미할 것이다. 혁신의 창안자가 민간 기업에서처럼 파격적인 승진을 할 수 있을까? 연공서열과 무사안분을 중시하는 관료제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에서의 혁신은 그야말로 지난(至難)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에서도 혁신을 위한 노력이 쉴 새 없이 기울여진다. 마치 혁신하기가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공공기관이 혁신을 생산할 때 가장 큰 수혜자는 기관도, 혁신을 제안한 임직원도 아닌, 국민이다. 공공기관에서의 혁신은 기관의 사익(私益)이 아닌 공익(公益)을 창출한다. 공익은 경제적 가치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양한다. 공공기관에서 혁신이 일어난다면, 이는 혁신의 동인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므로 특별한 의의가 있다. 사익과 달리 공익은 그것을 제고한 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늘어난 공익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축적된다. 사회적 자본은 차후의 공익을 생산하기 위한 자원이다. 공공기관에서의 혁신은 이처럼 가치있다.